한국교회를 잠식한 WCC의 발상 - 크리스천투데이 호주판/단기선교사 공개 모집
5,009
2012.06.23 10:26
짧은주소
- - 짧은주소: http://penielths.org/bbs/?t=79 주소복사
본문
하승무 목사/ http://au.christiantoday.co.kr/view.htm?id=20606
(시인, 퓨리탄채플 담임, 전 한국개혁신학연구원 역사신학 조교수)
오는 2013년 제10차 부산 WCC(세계교회협의회)총회 개최를 앞두고 한국교회가 반목과 갈등이 거듭되는 가운데 해방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는 지난 과거보다도 WCC의 영향이 단지 자유주의 기독교 세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부산총회 이후 WCC는 한층 더 그들의 신학 패러다임 가운데 하나인 반기독교적인 종교다원주의와 상대주의 진리관에 의해 혼합종교화와 한국교회의 급격한 쇠락이 예상된다.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오늘의 문제만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WCC는 해방이후, 한국교회의 대분열과 자유주의의 독버섯을 교회에 뿌리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제1,2차 합동·기장의 분열과 고려의 환원에 비견할 수 없는 한국 장로교회의 3차 분열은 WCC를 적극 지지하고 부산총회를 성사시킨 지금의 예장 통합 측에 의해서 발단됐다.
세계 2차 대전 직후 창립된 WCC는 표면적으로 전 세계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한다고 표지(標識)를 내세웠다. 그러나 지금까지 WCC의 행보는 성경적인 연합과 일치에서 벗어난 조직과 기구 중심의 친교, 성만찬, 하나님의 선교, 사회적 복음운동, 인권운동, 환경운동 등, 세계 교회연합운동을 전개해 왔다. 이는 교회가 역사적으로 신앙의 본질과 교리 문제로 인해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세계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성경이 진술하는 진리 · 성경 진리를 그대로 담아 표현한 신조 · 성경이 보증하는 신앙고백 중심의 바른 성경관과 진리관을 확립한 제7차까지의 에큐메니칼 공의회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나타낸다.
WCC의 이 같은 성격과 운동은 성경적 교회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WCC 기구의 3가지 핵심 운동(신앙과 직제‘Faith & Order’, 삶과 봉사'Life & Work', 세계선교'Mission & Evangelism')으로 조직되어 지금까지 활동해 온 것을 면면히 살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2일 크리스천투데이에 실린 김명혁 칼럼을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복음주의자로 알려졌던 김명혁 목사는 목회자이기 전에 장로교 목사를 양성하는 개혁주의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쳤던 신학자이다. 본인의 의사에 따라 WCC에 참여하는 것을 타인이 강제하거나 비난할 수 없다. 이는 극히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뉴스를 통해서 김명혁 목사가 WCC 부산총회 준비기획위원에 동참했다는 소식을 듣고 심히 우려하는 가운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앙과 신학이 변질되지 않았다면 이런 판단을 할수 있을까!’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는 스스로 ‘WCC의 신학적인 입장과 급진적인 방향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복음주의적 입장을 피력’했다고 밝혀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명혁 목사의 말에 동의할 수가 없다. 칼럼을 통해서 밝힌 거듭된 주장은 궁색한 변명이거나 아니면 WCC의 신학적 패러다임과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이다. 그는 여느 기독교 목회자가 아니다. 개혁주의 장로교 목사요, 신학자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문적 활동과 신앙이 무색할 정도로 WCC 핵심 사상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보다는 자기 변호적 주장만을 거듭하고 있다.
김명혁 목사는 WCC 참여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WCC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인 입장과 제4차 웁살라 총회와 제6차 밴쿠버 총회 그리고 기타 WCC 총회에 세계복음주의자들이 참여한 사실을 근거로 제시한다. 또한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타 종교에 대한 너그럽지 못한 태도와 WCC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로 인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이미지 손상을 예로 들고 있다. 하지만 그의 결정적인 오류는 김명혁 목사 스스로가 ‘한국교회가 WCC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와 ‘WCC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칼럼 내용이다.
김명혁 목사의 신앙과 신학에 있어서 급격한 이탈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오늘날 사회적인 문제와 한국교회의 문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WCC에서 배울 것을 못 배워서가 아니다. 또한 타종교인에 대한 너그럽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동의한다. 그러나 그는 타종교인의 동일한 관점과 시각에서 기독교를 매도하고 있다. 김명혁 목사와 에큐메니칼 운동에 동참하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타종교인과 무신론자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에 관한 핵심 교리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종교행사나 기타 모임, 각종 연구 활동, 전지구촌의 문제에 공동 참여한다고 해서 기독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긍정적인 언어와 너그러운 태도로 사적인 교류를 긴밀히 한다고 해서 기독교의 본질을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착각이다.
문제는 김명혁 목사의 시각이 WCC에서도 무엇인가 배울 수 있다는 인식과 신학적인 정체성이다. 한국교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성경의 분명한 입장을 포기하거나 WCC 신학 패러다임과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이다. 또한 WCC에서 배울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우리는 누구나 죽을 때까지 조금씩, 조금씩 배워가는 불완전한 존재들’ 이라는 보편적인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개혁주의 목사요, 신학자의 입에서 진리와 비진리의 본질적인 논의를 일반화의 논거에 의해 자신의 WCC 참여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불신앙의 자세이거나 신학의 변질이 아니면 그 무엇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늘날 WCC에 참여하는 대다수 교회는 WCC의 정체에 대해 너무나 안이한 태도와 성경적인 동일한 신앙고백 교회로 인식하고 있다.
WCC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다양한 신학적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WCC 본질 중에 하나인 자유주의 신학 사상은 1961년 뉴델리총회에서 채택한 헌장을 세밀히 살펴보면 드러난다. 헌장 안에 “성서에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며 구원자이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어떻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한다고 보는가? 라고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구는 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을 지나치게 단순히 서술한 것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단순한 서술에 불과하다고 보는 근거는 ‘성서에 따라’ 라는 표현이다.
WCC의 헌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관한 문제 외에 성경이 분명히 밝히고 있는 기본적인 신앙고백조차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있다. 전체 내용을 보면 세계적인 기독교 조직으로서는 너무나 단순화된 내용이다. 특히 ‘성서에 따라’에서 ‘에 따라’의 표현은 신앙고백의 주관적 서술 방식이 전혀 아니다. 이는 WCC가 표방하는 신앙고백이 성경이 요구하는 신앙고백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교묘히 나타내는 3자적 개별 서술 방식 즉 타종교적 또는 무신론적 접근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반기독교적 코드이다. 따라서 WCC는 성경이 요구하는 신앙고백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성경의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같은 신학용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동일한 공동체로 보는 것은 참으로 무지한 자세이다.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용어의 표현과 서술에 따라 개념이 전혀 다르거나 극과 극의 양상을 드러낸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관한 신앙고백의 표현이 ‘~에 따라’의 3자적 서술 방식으로 표현한 것은 WCC가 표방한 헌장이 성경이 요구하는 신앙고백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반증한다. 이 방식에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며 구원자이다’라는 표현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내용과 동일해 보이지만 성경이 요구하는 의미와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성경의 권위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기독교의 신론, 기독론, 구원론이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3자적 서술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이 외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성경적 신앙고백을 거부하는 WCC의 자유주의 사상의 코드는 다양하다.
그런데 김명혁 목사는 이 같은 반기독교적인 WCC의 코드를 간과한 채, WCC의 신학적 패러다임과 정체성에 대한 안일한 태도와 적극적인 포용주의를 거듭 표방하고 있다. 그들의 관점과 시각에서 한국교회를 판단하고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는 칼럼에서 WCC 참여의 정당성을 변호하기 위해 지금까지 세계적인 복음주의자들이 참여했다는 것을 예로 든다. 이는 참으로 개혁주의 신학자의 대응 방식으로는 함량 미달이 아닐 수 없다.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를 참여자들의 성격과 수에 따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는 계량적으로나 현상학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기독교 본질의 문제이다. WCC가 추구하는 전 지구촌의 사회 문제와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이 머리되신 교회의 생명력에 관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일부 복음주의자들이 참여해 온 WCC가 지금까지 복음주의자들의 비판과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 성경적인 조직으로 발전해 왔는가? 묻고 싶다. 또 피터 바이어하우스, 존 스토트 등이 참여하여 그들이 생각한 바대로 미국과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교회가 부흥하였는가? 묻고 싶다. 오히려 WCC를 포용하고 수용한 이들 교회는 부흥하기 보다는 쇠락의 길로 달려 왔다. 19세까지 쟁쟁했던 복음주의 교회는 20세기 초 이후 WCC 침투로 신자들은 교회를 떠나고 교회당은 폐쇄되어 술집과 오락장으로 심지어 이슬람의 회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은 교회 역사가 우리에게 엄밀히 교훈하는 바를 외면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WCC에 대한 안이한 자세와 적극적인 포용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이 성사시킨 WCC의 부산총회 개최를 종교의 자유가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를 막을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나 없다. 그러나 WCC는 표지(標識)만 기독교적이지 실제 활동과 내용은 반기독교적이며 다양한 신학적 패러다임 안에서 교회의 생명력을 파괴하고 세속의 물결과 이단 사상 그리고 시대적 사조에 무방비케 하는 자유주의 사상으로 한국교회를 잠식시키고 있다. 이는 엄밀히 따지면 적그리스도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교회와 김명혁 목사는 WCC의 전략 전술이 겉과 속이 다르다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들은 자유주의 신학 사상과 고도의 다양한 신학적 패러다임 안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주지하기를 바란다. 김명혁 목사에게 한 가지 촉구한다. 지금이라도 스스로 복음주의자라고 생각한다면 하루속히 WCC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여 참여를 중단하기를 바란다. 지난날 WCC로 인한 한국 장로교회의 3차 분열의 중심에 서 있었던 합신과 합동신대원 창립 핵심멤버였던 노진현 목사는 1999년 1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WCC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장로교회의 3차 분열(당시 43회 총회장)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고 하며 ‘WCC를 지지하는 목회자들은 국내에서는 개혁 신앙을 부르짖고 밖으로는 타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불가한 것이 아닙니까? 개혁신앙은 겉과 속이 같아야죠. 지금도 일부 목회자들을 보면 신학은 개혁 신앙인데 강단에서는 딴소리를 하니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신학과 신앙, 설교가 모두 일치되어야 바른 목회라고 할 수 있지요’ 라고 했다.
WCC와 관련된 김명혁 목사의 행보와 한국교회의 현실을 노진현 목사가 생전에 목격했다면 복음적 한국교회를 잠식하는 WCC의 망령이 자유로이 활개치고 있다고 통탄하지 않겠는가! 이제 한국교회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앞으로 구미와 유럽 교회의 전철을 밞지 말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교회 공동체 안에 오염되어 있는 물질적, 세속적, 기복적, 신비주의적, 가시적 부흥주의, 사회적 복음주의에서 성경적 복음주의로 회귀해야할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있다. 필자가 본고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모 기독교 인터넷신문 편집장과의 대화에서 참으로 한국교회의 암울한 단면을 확인했다. 그는 말하기를 WCC가 무엇이 문제입니까? 라고 반문하며 한국교회가 이단에 무관심하다고 질타했다. 지면을 통해서 답하고자 한다. 성경적 복음주의 교회는 이단에 대해서 결코 무관심하지 않으며 요즘 한국교회를 어지럽히는 신천지와 같은 단체에 대한 경계와 대처를 주도적으로 해나가고 있다.
오히려 이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WCC를 포용하고 수용하는 다수 교회가 이단에 대해서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이단에 대응하는데도 매우 취약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것이 바른 신앙인지 교회의 생명력을 지켜내는 교리 교육과 바른 신학 사상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바른 신앙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 신앙과 신학 사상이 변질되었기 때문에 이단의 도전에 대응할 능력이 전무한 것이다. 정작 위험한 것은 적군이 아군의 복장을 하거나 적군도 아군도 아닌 자가 교회 안에서 활개를 친다면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알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은 겉모습과 속 내용이 동일한지 살펴보고 제대로 파악하는데 있다. 여기에 유일한 기준이 바른 성경관과 바른 신학 사상으로 분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이단의 준동도 면밀히 경계해야 하겠지만, 더욱 경계해야 할 대상은 WCC이다. 교회의 생명력과 복음적인 교회를 파괴하는 WCC의 종교다원주의와 상대주의, 종교혼합주의 등 다양한 신학적 패러다임을 정확히 간파하고 이를 경계하는데 있다. 사단과 사악한 어둠의 세력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종교와 사상, 학문과 문화 그리고 세상의 조직과 기구, 다양한 세상 방식을 통해서 주님의 머리되신 교회를 파괴하려 든다. 이제는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지난날 일제하 한국교회의 배교의 역사와 우리의 영적 무지와 무관심과 게으름을 철저히 회개해야 할 때이다.
<KPTS 통신- 단기 선교사 공개 모집>
2013년 상반기 제3국에서 6개월간 선교영어를 담당할 단기선교사로 섬기고자 하는 30대 이후, 목회자 및 형제 자매님의 지원을 요청합니다.
제출서류/ 지원동기 및 신앙고백서 1부, 이력서 1부(사진 1매 부착 ), 출석교회 담임목사 또는 당회장 추천서 1부(목회자는 해당 증명서 1부)/ 제출처 : 부산광역시 남부산우체국 사서함 159호 KPTS Busan Office/ Tel o2-575-3364
(시인, 퓨리탄채플 담임, 전 한국개혁신학연구원 역사신학 조교수)
오는 2013년 제10차 부산 WCC(세계교회협의회)총회 개최를 앞두고 한국교회가 반목과 갈등이 거듭되는 가운데 해방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는 지난 과거보다도 WCC의 영향이 단지 자유주의 기독교 세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부산총회 이후 WCC는 한층 더 그들의 신학 패러다임 가운데 하나인 반기독교적인 종교다원주의와 상대주의 진리관에 의해 혼합종교화와 한국교회의 급격한 쇠락이 예상된다.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오늘의 문제만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WCC는 해방이후, 한국교회의 대분열과 자유주의의 독버섯을 교회에 뿌리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제1,2차 합동·기장의 분열과 고려의 환원에 비견할 수 없는 한국 장로교회의 3차 분열은 WCC를 적극 지지하고 부산총회를 성사시킨 지금의 예장 통합 측에 의해서 발단됐다.
세계 2차 대전 직후 창립된 WCC는 표면적으로 전 세계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추구한다고 표지(標識)를 내세웠다. 그러나 지금까지 WCC의 행보는 성경적인 연합과 일치에서 벗어난 조직과 기구 중심의 친교, 성만찬, 하나님의 선교, 사회적 복음운동, 인권운동, 환경운동 등, 세계 교회연합운동을 전개해 왔다. 이는 교회가 역사적으로 신앙의 본질과 교리 문제로 인해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세계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성경이 진술하는 진리 · 성경 진리를 그대로 담아 표현한 신조 · 성경이 보증하는 신앙고백 중심의 바른 성경관과 진리관을 확립한 제7차까지의 에큐메니칼 공의회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나타낸다.
WCC의 이 같은 성격과 운동은 성경적 교회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WCC 기구의 3가지 핵심 운동(신앙과 직제‘Faith & Order’, 삶과 봉사'Life & Work', 세계선교'Mission & Evangelism')으로 조직되어 지금까지 활동해 온 것을 면면히 살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2일 크리스천투데이에 실린 김명혁 칼럼을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복음주의자로 알려졌던 김명혁 목사는 목회자이기 전에 장로교 목사를 양성하는 개혁주의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쳤던 신학자이다. 본인의 의사에 따라 WCC에 참여하는 것을 타인이 강제하거나 비난할 수 없다. 이는 극히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뉴스를 통해서 김명혁 목사가 WCC 부산총회 준비기획위원에 동참했다는 소식을 듣고 심히 우려하는 가운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앙과 신학이 변질되지 않았다면 이런 판단을 할수 있을까!’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는 스스로 ‘WCC의 신학적인 입장과 급진적인 방향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복음주의적 입장을 피력’했다고 밝혀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명혁 목사의 말에 동의할 수가 없다. 칼럼을 통해서 밝힌 거듭된 주장은 궁색한 변명이거나 아니면 WCC의 신학적 패러다임과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이다. 그는 여느 기독교 목회자가 아니다. 개혁주의 장로교 목사요, 신학자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문적 활동과 신앙이 무색할 정도로 WCC 핵심 사상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보다는 자기 변호적 주장만을 거듭하고 있다.
김명혁 목사는 WCC 참여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WCC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인 입장과 제4차 웁살라 총회와 제6차 밴쿠버 총회 그리고 기타 WCC 총회에 세계복음주의자들이 참여한 사실을 근거로 제시한다. 또한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타 종교에 대한 너그럽지 못한 태도와 WCC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로 인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이미지 손상을 예로 들고 있다. 하지만 그의 결정적인 오류는 김명혁 목사 스스로가 ‘한국교회가 WCC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와 ‘WCC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칼럼 내용이다.
김명혁 목사의 신앙과 신학에 있어서 급격한 이탈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오늘날 사회적인 문제와 한국교회의 문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WCC에서 배울 것을 못 배워서가 아니다. 또한 타종교인에 대한 너그럽지 못한 부분도 있다고 동의한다. 그러나 그는 타종교인의 동일한 관점과 시각에서 기독교를 매도하고 있다. 김명혁 목사와 에큐메니칼 운동에 동참하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타종교인과 무신론자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에 관한 핵심 교리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종교행사나 기타 모임, 각종 연구 활동, 전지구촌의 문제에 공동 참여한다고 해서 기독교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긍정적인 언어와 너그러운 태도로 사적인 교류를 긴밀히 한다고 해서 기독교의 본질을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착각이다.
문제는 김명혁 목사의 시각이 WCC에서도 무엇인가 배울 수 있다는 인식과 신학적인 정체성이다. 한국교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성경의 분명한 입장을 포기하거나 WCC 신학 패러다임과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이다. 또한 WCC에서 배울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우리는 누구나 죽을 때까지 조금씩, 조금씩 배워가는 불완전한 존재들’ 이라는 보편적인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개혁주의 목사요, 신학자의 입에서 진리와 비진리의 본질적인 논의를 일반화의 논거에 의해 자신의 WCC 참여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불신앙의 자세이거나 신학의 변질이 아니면 그 무엇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늘날 WCC에 참여하는 대다수 교회는 WCC의 정체에 대해 너무나 안이한 태도와 성경적인 동일한 신앙고백 교회로 인식하고 있다.
WCC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다양한 신학적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WCC 본질 중에 하나인 자유주의 신학 사상은 1961년 뉴델리총회에서 채택한 헌장을 세밀히 살펴보면 드러난다. 헌장 안에 “성서에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며 구원자이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어떻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한다고 보는가? 라고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구는 성경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을 지나치게 단순히 서술한 것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단순한 서술에 불과하다고 보는 근거는 ‘성서에 따라’ 라는 표현이다.
WCC의 헌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관한 문제 외에 성경이 분명히 밝히고 있는 기본적인 신앙고백조차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있다. 전체 내용을 보면 세계적인 기독교 조직으로서는 너무나 단순화된 내용이다. 특히 ‘성서에 따라’에서 ‘에 따라’의 표현은 신앙고백의 주관적 서술 방식이 전혀 아니다. 이는 WCC가 표방하는 신앙고백이 성경이 요구하는 신앙고백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교묘히 나타내는 3자적 개별 서술 방식 즉 타종교적 또는 무신론적 접근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반기독교적 코드이다. 따라서 WCC는 성경이 요구하는 신앙고백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성경의 권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같은 신학용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동일한 공동체로 보는 것은 참으로 무지한 자세이다. 같은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용어의 표현과 서술에 따라 개념이 전혀 다르거나 극과 극의 양상을 드러낸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관한 신앙고백의 표현이 ‘~에 따라’의 3자적 서술 방식으로 표현한 것은 WCC가 표방한 헌장이 성경이 요구하는 신앙고백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반증한다. 이 방식에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며 구원자이다’라는 표현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내용과 동일해 보이지만 성경이 요구하는 의미와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성경의 권위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기독교의 신론, 기독론, 구원론이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3자적 서술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이 외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성경적 신앙고백을 거부하는 WCC의 자유주의 사상의 코드는 다양하다.
그런데 김명혁 목사는 이 같은 반기독교적인 WCC의 코드를 간과한 채, WCC의 신학적 패러다임과 정체성에 대한 안일한 태도와 적극적인 포용주의를 거듭 표방하고 있다. 그들의 관점과 시각에서 한국교회를 판단하고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는 칼럼에서 WCC 참여의 정당성을 변호하기 위해 지금까지 세계적인 복음주의자들이 참여했다는 것을 예로 든다. 이는 참으로 개혁주의 신학자의 대응 방식으로는 함량 미달이 아닐 수 없다.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를 참여자들의 성격과 수에 따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는 계량적으로나 현상학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기독교 본질의 문제이다. WCC가 추구하는 전 지구촌의 사회 문제와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이 머리되신 교회의 생명력에 관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일부 복음주의자들이 참여해 온 WCC가 지금까지 복음주의자들의 비판과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여 성경적인 조직으로 발전해 왔는가? 묻고 싶다. 또 피터 바이어하우스, 존 스토트 등이 참여하여 그들이 생각한 바대로 미국과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교회가 부흥하였는가? 묻고 싶다. 오히려 WCC를 포용하고 수용한 이들 교회는 부흥하기 보다는 쇠락의 길로 달려 왔다. 19세까지 쟁쟁했던 복음주의 교회는 20세기 초 이후 WCC 침투로 신자들은 교회를 떠나고 교회당은 폐쇄되어 술집과 오락장으로 심지어 이슬람의 회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은 교회 역사가 우리에게 엄밀히 교훈하는 바를 외면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WCC에 대한 안이한 자세와 적극적인 포용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이 성사시킨 WCC의 부산총회 개최를 종교의 자유가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를 막을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나 없다. 그러나 WCC는 표지(標識)만 기독교적이지 실제 활동과 내용은 반기독교적이며 다양한 신학적 패러다임 안에서 교회의 생명력을 파괴하고 세속의 물결과 이단 사상 그리고 시대적 사조에 무방비케 하는 자유주의 사상으로 한국교회를 잠식시키고 있다. 이는 엄밀히 따지면 적그리스도의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교회와 김명혁 목사는 WCC의 전략 전술이 겉과 속이 다르다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들은 자유주의 신학 사상과 고도의 다양한 신학적 패러다임 안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주지하기를 바란다. 김명혁 목사에게 한 가지 촉구한다. 지금이라도 스스로 복음주의자라고 생각한다면 하루속히 WCC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여 참여를 중단하기를 바란다. 지난날 WCC로 인한 한국 장로교회의 3차 분열의 중심에 서 있었던 합신과 합동신대원 창립 핵심멤버였던 노진현 목사는 1999년 1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WCC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장로교회의 3차 분열(당시 43회 총회장)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고 하며 ‘WCC를 지지하는 목회자들은 국내에서는 개혁 신앙을 부르짖고 밖으로는 타협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불가한 것이 아닙니까? 개혁신앙은 겉과 속이 같아야죠. 지금도 일부 목회자들을 보면 신학은 개혁 신앙인데 강단에서는 딴소리를 하니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신학과 신앙, 설교가 모두 일치되어야 바른 목회라고 할 수 있지요’ 라고 했다.
WCC와 관련된 김명혁 목사의 행보와 한국교회의 현실을 노진현 목사가 생전에 목격했다면 복음적 한국교회를 잠식하는 WCC의 망령이 자유로이 활개치고 있다고 통탄하지 않겠는가! 이제 한국교회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앞으로 구미와 유럽 교회의 전철을 밞지 말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교회 공동체 안에 오염되어 있는 물질적, 세속적, 기복적, 신비주의적, 가시적 부흥주의, 사회적 복음주의에서 성경적 복음주의로 회귀해야할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있다. 필자가 본고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모 기독교 인터넷신문 편집장과의 대화에서 참으로 한국교회의 암울한 단면을 확인했다. 그는 말하기를 WCC가 무엇이 문제입니까? 라고 반문하며 한국교회가 이단에 무관심하다고 질타했다. 지면을 통해서 답하고자 한다. 성경적 복음주의 교회는 이단에 대해서 결코 무관심하지 않으며 요즘 한국교회를 어지럽히는 신천지와 같은 단체에 대한 경계와 대처를 주도적으로 해나가고 있다.
오히려 이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WCC를 포용하고 수용하는 다수 교회가 이단에 대해서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이단에 대응하는데도 매우 취약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것이 바른 신앙인지 교회의 생명력을 지켜내는 교리 교육과 바른 신학 사상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바른 신앙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 신앙과 신학 사상이 변질되었기 때문에 이단의 도전에 대응할 능력이 전무한 것이다. 정작 위험한 것은 적군이 아군의 복장을 하거나 적군도 아군도 아닌 자가 교회 안에서 활개를 친다면 도무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알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은 겉모습과 속 내용이 동일한지 살펴보고 제대로 파악하는데 있다. 여기에 유일한 기준이 바른 성경관과 바른 신학 사상으로 분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이단의 준동도 면밀히 경계해야 하겠지만, 더욱 경계해야 할 대상은 WCC이다. 교회의 생명력과 복음적인 교회를 파괴하는 WCC의 종교다원주의와 상대주의, 종교혼합주의 등 다양한 신학적 패러다임을 정확히 간파하고 이를 경계하는데 있다. 사단과 사악한 어둠의 세력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종교와 사상, 학문과 문화 그리고 세상의 조직과 기구, 다양한 세상 방식을 통해서 주님의 머리되신 교회를 파괴하려 든다. 이제는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지난날 일제하 한국교회의 배교의 역사와 우리의 영적 무지와 무관심과 게으름을 철저히 회개해야 할 때이다.
<KPTS 통신- 단기 선교사 공개 모집>
2013년 상반기 제3국에서 6개월간 선교영어를 담당할 단기선교사로 섬기고자 하는 30대 이후, 목회자 및 형제 자매님의 지원을 요청합니다.
제출서류/ 지원동기 및 신앙고백서 1부, 이력서 1부(사진 1매 부착 ), 출석교회 담임목사 또는 당회장 추천서 1부(목회자는 해당 증명서 1부)/ 제출처 : 부산광역시 남부산우체국 사서함 159호 KPTS Busan Office/ Tel o2-575-336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